1959년 5월15일 타일랜드에서 장차 세계복싱사에서 가장 위대한 챔피언중의 한명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왼손잡이 슈라 사엔캄이 그의 쌍둥이 형과 함께 태어난다.
태국의 터프한 사나이라면 의례 그렇듯 수라 사엔캄역시 최강의 낙무아이를 목표로 수련했다. 1980년, 격투의 성지 룸피니의 최강자가된 펫챠분의 시골뜨기는 이후 카오사이 갤럭시라는 이름을 얻었고 세게를 향해 비상을 개시한다.
1980년에 프로복싱 라이센스를 획득한 카오사이 갤럭시는 초전 여섯시합을 연승으로 장식하고 81년 태국 타이들에 도전하지만 챔피언이었던 샤크다 샥수리에게 그의 캐리어를 통틀어 처음이자 마지막인 판정에의한 패배를 경험한다.
이후 카오사이 갤럭시는 그에게 패배를 안겼던 샤크다를 포함한 무려 열다섯의 상대를 연속 KO로 제압하는 괴력을 시위하며 WBA 슈퍼 플라이급 챔피언 와타나베 지로에 대한 도전권을 획득한다.
하지만 와타나베 지로는 방어전을 기피했고 결국 WBA는 그에게서 타이틀을 박탈하게 된다. 1984년카오사이 갤럭시는 동급2위였던 무패의 에우제비오 에스피뇰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상대를 일방적으로 두드린끝에 6라운드, 상대가 양훅의 보디공격을 끝내 견디지못해 주저앉음으로 챔피언 밸트를 손에 넣게 된다.
이후 그는 이체급 역사상 최장인 19회의 방어전을 치루어 내게 되는데 이중 KO는 16회에 달한다.
80년대 중반 한국의 복싱열기는 뜨거웠고 많은 선수들이 세계의 문을 두드렸다, 카오사이 갤럭시는 정병관, 최창호, 장태일, 김용강등 여러명의 한국복서들과 싸웠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도전한 한국인 그 누구에게도 라스트라운드의 종료를 알리는 공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이들중 김용강은 세계챔피언을 지낸 특급복서였다.
어린 시절부터 턱에 적중한 하이킥에 의해 턱이 망가진 많은 무에타이 출신 복서들과는 다르게 그의 턱은 강철 그 자체였다. 명확한 데피니션의 근육덩어리였던 카오사이 갤럭시는 자신의 내구력을 믿고 엄청나게 궤적이 화려했던 강타로 그의 상대를 철저하게 유린했다. 왼손잡이였던 그는 어깨선이 상대와 직각을 이루도록 허리를 튼 자세로 시함에 임했는데 이를통해 그는 왼손으로부터 궁극의 파괴력을 소환했다. 그는 왼손훅이 특기였지만 양손의 바디공격과 왼손스트레이트, 그리고 왼손으로 명치를 가격하는 스트레이트역시 일품이었다. 방어면에선 헛점이 많은선수였지만 그를 상대했던 누구도 카오사이 갤럭시에게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1991년 50승을 달성한 이 링의 파괴자는 은퇴를 선언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1999년 WBA 평의회의 결정에의해 카오사이 갤럭시의 이름이 명에의 전당에 헌액 되었다.
출처 : 이종격투기
글쓴이 : 나이 카놈 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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