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푸른빛 스포츠

[스크랩] 추억의 복서들 13. 피를 부르는 미치광이 아론 프라이어.

푸른빛 1 2007. 11. 23. 09:42

‘그 자신은 ‘the Hawk’라고 불리우길 좋아했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미치광이 혹은 괴짜라고 불렀다, 그것은 그의 복싱스타일과 경기메너 양편에서 적절한 별명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204승 16패, 상비군으로 밖에 나서지 못한 올림픽의 꿈을 뒤로하고 아론 프라이어는 1976년 프로의 링에 오르게 된다. 프로전향의 직전 골든글러브에서 그는 장차 위대한 4인중 한명으로 성장할 토머스 헌즈를 꺽기도 했고 이것은 그가 프로에서 이룰 성취에 대한 징조였을것이다.

 

처음의 8전동안 단 두명의 상대에게 종료의 공소리를 들려준 프라이어는 이후 26명의 상대를 모두 KO로 때려잡는 엽기적인 힘을 과시하게된다. 그 중에는 100전의 공식레코드를 자랑하던 살아있는 전설이자 WBA 라이트 웰터급 챔피언이었던 안토니오 세르반테스도 포합되어있다. 25전 전승 23KO의 전적으로 안토니오 세르반테스의 타이틀에 도전했던 프라이어는 트레이드 마크와같은 과격한 러쉬를 감행하다 불의의 라이트 크로스를 정통으로 허용하고 첫라운드에 생애 최초의 다운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다운 따위는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지지 못한다는듯 오른팔을 크게 휘두르는 제스추어와 함께 재개된 경기 내내 노장 챔피언을 압박해 들어갔다. 4라운드 위와 아래 좌우를 막론하고 괴이한 각도에서 읽을수 없는 타이밍을 노려 쏟아지는 아론 프라이어의 광란과도 같은 펀치러쉬에 살아있는 전설은 그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챔피언에 오른 후 여섯명의 도전자를 KO의 제물로 삼은 아론 프라이어는 세체급 정벌에 빛나는 백작 알렉시스 알게요와 만나게 된다. 프로모터 봅애럼에 의해 ‘The Battle of the Chamions’으로 명명된 이 시합은 스타일과 메너 양면에서 교과서 그 차체였던 알게요에 의해 극단적인 컨트라스트로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알게요는 자신보다 훨씬 무겁고 광폭한 아론 프라이어를 상대로 4체급의 야망을 불태웠지만 14라운드에 결국 치명적인 그로기상태에 몰리고 만다, 주심은 선수보호의 차원에서 티케이오를 선언했고 시합후 병원으로 직행한 알게요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잇을때까지 몇개월 동안 병원을 전전했어야 했다.

 

링 지에 의해 1982년 최고의 경기에 선정되었고 이후 동 매체 선정 80년대 최고의 경기로 기록된 이 명승부는 그러나 한가지 의혹을 남기고 있다. 그것은 12회에 프라이어가 마셨던 의문의 액체로써 레프리의 허가를 받지않고 반입된 이 병속에 든 액체를 마신 후 프라이어가 생기를 회목했다는 의혹이 있으며 이에 대한 의구를 제기하는 측에서 그 액체는 어떤 종류의 흥분제엿을것이라는 주장을 폈었다. 그러나 당시 플로리다 주 의 복싱룰에 소변검사는 채택되지 않았었고 미스테리는 영원히 풀수 없는 영역으로 사라져갔다.

 

우리나라의 김상현 선수를 3회 KO로 제압한 플이어는 다시한번 알게요의 야망을 분쇄하게 되며 이전 시합의 의또한 백작의 야망과 함께 기억의 저편에서 소멸하게된다. 이 시합이후 어떤이유에서인지 프라이어는 모티베이션을 잃은듯 했고 시합의 주기는 길어져 갔다 그러다 1987년 전성기를 한참지난후 보비 영 존스에게 프로데뷔 후 첫 패배를 기록한 후 3전을 더 싸우고 철권의 괴인은 링을 떠나게 된다.

 

1996년 세계복싱 기구에 의해 아론프라이어의 이름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두 주먹은 오직 상대의 파괴를 위해 사용했으며, 오직 헤드웍에의한 역동적인 디펜스로 궁극의 공격력을 소환했던 아론 프라이어. 40전 39승 35KO 1패, 방어가 불가능한 궤적의 강타와 컴비네이션과 단발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광적인 러시로 일세를 풍미했던 저 철권의 괴인이 남긴 교전의 기록이다.

출처 : 사나이 가는길
글쓴이 : 이용수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