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추억의 복서들 14. 19세 소년 세계를 정복하다 -김철호-
‘여러 타이틀 매치의 주인공 곁을 지키던 한 호남자는 콧수염의 사내다움으로 가끔은 시합의 주인공보다 강인인상을 남겼다. 그의 이름은 김철호, 그 역시 세계타이틀 5차방어에 빛나는 전 챔피언있다.’
1980년 한국 복싱은 상실의 시대를 맞았다. 김성준, 김상현, 박찬희에이어 국민복서로 추앙받던 김태식마저 타이틀을 잃었다. 아직 풍요하지 못했던 시절, 미친듯이 일에 매달리던 대한민국은 그 스트레스의 마지막 분출구 마저 잃고 말았다. 81년 1월 라파엘 오로노의 슈퍼 플라이급 타이틀을 노리고 베네주엘라의 상크리토발로 가는 비행기에 김철호가 몸을 실었을때 그를 주목하는 사람도, 그의 승리를 예상하는 사람도 없었다. 소수의 라디오 중계팀만이 동행한 쓸쓸한 원정이었다. 그러나 김철호의 의지는 이미 활화산과 같았을까, 초반의 일방적인 열세를 타고난 맺집과 오기에 가까운 정신력으로 극복하고 9회 레프트 라이트 레프트의 보디블로 3연타로 오로노를 쓰러뜨리게 되고 베네주엘라의 작은알리는 그것으로 다신 일어나지 못했다.
김철호는 그시대 복서들의 전형과는 다르게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 시대,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어디 먹고살만한 집안에서 아들이 복싱을 하도록 내버려 둘까. 그러나 김철호가 중학교를 채 졸업하기전 발생한 그 집안 가업이었던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를 분기로 마치 운명과도 같이 김철호는 위대한 여정에 결국 발을 들이게 된다.
힘과 투지에 비해 테크닉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고 특히 방어의 기교는 정상급 복서가 되기엔 무리라는 평을 받던 김철호였다. 그러나 이 뚝심좋은 19세의 청년은 라이벌들을 하나하나 꺽으면서 세계를 향해 전진했고 적지에서 최강의 챔피언을 쓰러뜨리고 귀중한 타이틀을 조국의 품에 안기는 쾌거를 이룩한다.
와타나베 지로는 구시켄 요코와 함께 일본 복싱사를 양분하는 거물이다. 김철호는 앞으로 일본의 영웅으로 성장할 와타나베 지로를 1차방어의 도전자로 맞아 15회 풀라운드의 판정으로 돌려세운다. 이것은 누가봐도 고전이었고 국내외의 평론가, 전문가 집단은 김철호의 실력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윌리 젠슨, 자칼 마루야마, 이시이 코키를 연속 KO로 박살내며 5차방어전에 이르렀을때 결국 그를 바판하던 세력들도 그의 불가사의한 마력에 한 팔을 접어주게 되었다.
멀리 태평양을 건너 베네주엘라에선 김철호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타이틀을 내 놓았어야 했던 오로노가 절치부심하고 복수전만을 기다리고있었다 22개월이 지난후 오로노는 복수의 기회를 잡았고 아무래도 김철호에 비해 한 수높은 기량을 인정받던 오로노는 결국 염원을 달성하게되며 이후 한차례의 경기를 더 가진후 김철호는 이후 미련없이 현역에서 물러섰다.
80년대는 아직 국가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고 시민들은 가난의 굴레를 벗기위해 소처럼 일하던 시대였다, 그리고 이시절 챔피언들은 단지 한명의 복서라기 보단 국민들의 시름을 덜어주던 국민의 보약과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80년대 초반 챔피언들은 힘들게 타이틀을 따내고도 단명하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러한 안타까움은 서서히 결집하여 위대한 챔피언을 바라는 국민적인 열망으로 승화되었고 이는 곧이어 장정구, 유명우라는 초특급 복서를 동시대에 둘씩이나 배출하게되는원동력이 되었던 것이 아닐지…..
1961년생 5피트 9인치의 오른손 잡이 김철호는 주위의 평가보다 한수위의 선수였고 24전 19승 2무 3패 9KO의 레코드를 남기고 한국 복싱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